노회찬재단은 6411 투명인간과 사회적약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에게 ‘쉼’을 제공하여 재충전과 심신의 회복을 돕는 ‘쉼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는 무려 25개 단체에서 공모에 지원했습니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사업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1000일이 넘는 천막농성으로 심신의 안정이 필요한 활동가 등 어느 한 곳도 빼기 어려울만큼 저마다 애환과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이번 심사에 참여한 이채은 노회찬재단 이사는 “시민사회단체에 정말 필요한 사업”이라면서, “앞으로 더 좋은 사업으로 재단 활동을 넓혀가 쉼지원사업에도 더 많은 곳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다”는 소회를 남겼습니다.
‘반빈곤운동공간 아랫마을’의 시작은 2010년이었습니다. 빈곤사회연대, 홈리스행동,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다섯 단체는 한데 모여 반빈곤운동의 거점을 만들고, 홈리스야학의 안정적인 운영을 도모하기로 했습니다. 순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매일 만나 회의하고 집회하던 사이라지만 회의실과 화장실과 부엌을 공유하며 하루하루 겹쳐 사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니까요. 점심밥은 빈곤사회연대가, 저녁밥은 홈리스행동이 차려먹는 일상부터, 아랫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 14년 사이 두 번 있었던 이사까지 어느 하나 쉬운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중략) 이번 엠티의 컨셉은 ‘푹 쉬자’였습니다. 매일 밥하는 우리, 이날은 손에 물 좀 덜 묻혀보자, 프로그램 짜는 게 일상인 사람들이니 일정 좀 덜 잡자. ‘푹 쉬자’는 기조 아래 은밀한 취향조사를 거듭한 결과 모두 원하는 프로그램은 세 가지, 숲 산책과 바다낚시, 물놀이로 정해졌습니다. 목적지는 고성, 남한의 북쪽 끝으로 향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후원회는 유가협 부모님들을 모시고 소풍 가는 사업을 부정기적으로 진행한다. 6년 전에 소풍 다녀온 이후 코로나 시기도 있었고, 유가협에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면서 소풍은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어렵사리 본회의에서 통과된 민주유공자법에 대해 대통령의 재의요구가 있었고,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폐기되었다. 22대 국회를 향한 투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유가협 부모님들과 후원회원들에게 잠깐의 휴식을 드리고 싶었던 때에 노회찬재단의 쉼지원 사업을 접하게 되었다...(중략) 최고의 명당이라는 강릉선교장에서 자고 와서 그런지, 충전이 충분히 된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다음날 유가협 한울삶을 방문하신다는 손님들을 맞이하려 일찍 떠나시는 부모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유가협 부모님들이 언제까지 바쁘게 활동하셔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과 언제까지 활동하실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활동을 우리가 좀 더 열심히 하자는 마음도 다지게 되었다. (유가협후원회 조미경)
연말이 다가오면서 10~11월에 진행해야 하는 토론회, 포럼, 각종 행사, 기금사업 마무리 등 그야말로 하루도 뺄 수 없는 상황에서 무려 이틀씩이나 빼서 떠나게 된 여행이었습니다. 자력으로는 도저히 기력을 차릴 수 없어 수액을 맞는 환자처럼 강제로라도 쉼이 필요한 우리였는데 마침 <노회찬 재단> 덕에 좋은 강제 수혈^^을 했습니다...(중략) 숙소에서 진행한 '카드로 뽑는 질문' 프로그램 통해 서로를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사무국장으로서 가장 어려웠을 때와 보람 있었을 때”란 질문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5개 사업을 혼자 진행하느라 허리 디스크가 나을 날이 없는 경우, 올해 처음 사무국장 되어 쏜살같이 흘러가는 날들 속에 '아 맞다'를 연발하며 긴장과 자책 속에 몇 달을 조마조마 하며 지내온 일, 장년차가 돼가지만 원숙해지기는커녕 산적한 일로 여전히 긴장 속에 있고 최근 번아웃을 통과한 경우, 중간관리자 역할로 힘든 일을 겪고 신청한 기금사업이 천재지변으로 무산됐는데 왠지 내 탓도 있는 듯해 자책한 경우, 안팎으로 힘든 일이 너무 많아 뭐라 해줄 말이 없는 경우 등 있을 수 있는 모든 고민들을 풀어놓으면서 ‘나만 '아 맞다'를 연발하는 게 아니구나’하는 위안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책하며 산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에게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희영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